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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그무 2021. 1. 20.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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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저물어가는 시간, 고등학교 3학년에 들어가는 B는 TV를 보고 있었다. TV 안의 내용은 여러 벌레들이 우화 하는 모습과 살아남기 위해 천적에게서 도망치거나 천적들을 물러나게 하는 내용이었다. 그 방송이 끝난 후에도 그는 그저 TV를 볼뿐이었다. 그다음에는 누에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하나는 전의 내용처럼 누에 벌레가 성장하는 과정이 나왔고, 그다음은 누에고치를 이용하는 영상이었다. 그렇게 두 방송을 연이어 본 그는, 남은 음료수를 한 입에 털어놓고는, '저 벌레들은 자신의 삶이 저렇게 되었으리란 걸 알았을까, 저런 삶이라면 포기하는 게 낫지 않을까, 천적에게 먹힐 텐데 저항하지 않는 게 좋지 않나, 아무리 생각해도 의미 없는 벌레 자체구나'라고 말했다. 그러고선, 라면을 먹기 위해 물을 끓이며 '나도 고3인데 공부 좀 해야지'라며 투덜거리고 말았다. 잘 익은 라면에 계란을 풀어 젓고 식탁에 가져와 앉고, 스마트폰을 눕혀 동영상을 튼다. 공부 좀 해야 한다며 투덜거리던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는지, 액정엔 게임 화면이 나와있었고, 동영상을 보느라 뜨거운 것도 모른 채 라면을 먹고 대충 싱크대에 담궈놨다. 잠깐 양치를 하곤, 공부를 하려는 듯이 책상에 앉더니 컴퓨터를 키고 스마트폰으로 보던 게임을 친구와 함께 즐긴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고선, 후회한다는 듯이 한탄하며 언젠가는 공부를 하겠다는 열의에 불타 침대에 누워 새벽이 무르익을 때까지 동영상을 보다가 잤다. 그렇게 아침이 되어 일어난 순간, 그의 눈에 비치는 세상이 이상했다. 안락한 침대의 느낌은 조금 이물적이게 달라져있었고, 심지어 그 침대마저도 없이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으며, 자신의 존재 자체에도 이질감이 서려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느낌들을 받고 다른 곳을 지나가다가 물가에 비친 그의 모습은 벌레였다. 그가 그렇게 의미없다고 말했던 벌레가 된 그는 절망했다. 그렇게 한참동안을 기어다니다가 그림자가 서린 것을 눈치 챈 그는, 근처의 바위 틈으로 숨었다. 그가 바위에 들어간 순간, 새가 날아와 그가 기어다니던 자리를 지나갔고, 한 숨 돌린 그는 일단 자신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시간이 지나, 그의 몸에 변화가 찾아왔다. 우화를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었지만, 그는 그러한 변화를 제대로 눈치채지 못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자신이 인간이 아님에도 그의 의식 자체에 박혀있는 자만과 나태는 그를 위기 속으로 몰아넣었다. 결국 안전하지 못한 곳에서 번데기가 되었고, 그렇게 그는 죽었다. 그렇게 벌레의 삶을 체험한 그는 잠에서 깨어나, 머리를 잡으며 울었다. 벌레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자신에게, 노력하지 않았고, 나태했던 자신에게. 결국 그러한 사실을 깨달은 그는 나비나 나방조차 되지 못하는 삶에는 의의가 없다며, 본격적인 준비를 했다만, 같은 내일이 될지, 우화에 성공해 날아오를 수 있을지는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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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2021.01.10